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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이야기*

첫번째 서울 이야기 - 종로구

by 짱짱맘s 2020.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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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제가 빠숑님의 "수도권 알짜 부동산 답사기"를 읽고 있답니다. 이 책에서는 수도권의 각 지역에 맞는 투자법을 알려주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각 지역의 역사 및 풍수지리를 설명해 주어서 지리책으로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빠숑님의 책을 제 블로그에 인용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시작은 종로구 입니다.


대한민국 도로의 시작


'도로원표'를 아시나요?

고속도로 중앙분리대 상단을 보면 '상행선 서울 기준 몇 km, 하행선 부산 기준 몇 km' 하는 식의 표식이 있는데, 그 시작이 되는 기준점을 바로 도로원표라고 합니다. 이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각 도시까지의 거리뿐만 아니라 도쿄, 베이징, 뉴욕, 런던, 파리 등 세계 주요 도시까지의 거리를 산정하게 됩니다.

대한민국의 기준을 세워주는 이 도로원표가 종로구 세종로 중앙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모든 도로의 기점이자 종점이며, 종로가 우리 국토의 중심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지요.


과거, 그리고 현재의 중심지




종로구는 조선 건국 후 수도를 개성에서 한양으로 천도(1394년)한 이래 오늘날까지 약 600여 년 동안 국가의 중심지역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잇습니다. 정치, 행정, 문화, 기업, 상업 등 모든 분야에서 말이죠.

조선시대에는 한양으로 드나들려면 4대문과 4소문을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당시 종로는 그 출입문들의 여닫는 시간을 알려주던 중요한 역할을 한 곳으로 종로라는 말 자체가 '종각이 있는 거리'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현재 이곳에는 청와대와 정부청사가 있고, 이를 중심으로 외교기관들이 포진되어 있습니다. 세종문화회관과 대학로 인근 각종 문화시설들은 이곳이 문화의 중심지임을 알게 해줍니다. 업무시설로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많은 언론사의 본사가 있고, 현대, SK, 교보 등 많은 대기업들의 본사가 있습니다.

이처럼 종로는 비록 과거의 모습은 달라졌지만 도시로서의 핵심 기능에 있어서는 변함이 없습니다. 또한 종로를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는 북악산과 인왕산, 낙산 그리고 청계천의 자연환경도 변함없이 남았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매력적으로 공존하는 곳

종로구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연령대를 불문하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통행하고, 생활하고, 일하는 곳 중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유일한 지역' 이라 하겠습니다.

종로구의 배경이라 할 수 있는 북악산과 인왕산이 있고,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종묘, 사직단, 동대문 등 수많은 문화유산과 전통 한옥이 잘 보존되어 있어 고풍스런 느낌을 줍니다. 반면 세종로, 신문로, 종로, 청계천의 고층빌딩을 바라보고 있으면 참 현대적이라는 느낌을 주기도 하죠.

이렇게 종로는 신구 건축물들이 서로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냅니다. 이런 오묘한 매력이 어필했는지, 외국인들의 필수 관광지 지역으로 자리 잡기도 했습니다.

현재 상주인구는 20만 명도 채 되지 않지만 주간활동인구는 관광객을 제외하고도 200만 명이 넘어, 집객력은 가히 최고의 지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마다 개성 있는 곳

서울의 진산은 북악산입니다. 북악산 아래에는 왕궁이 자리 잡았죠. 가회동 일대는 전통 한옥들이, 세종로에는 현대식 고층빌딩들과 상가가 밀집해 있습니다. 인사동에는 골동품과 표구 전문점이, 청계천 주변에는 전자제품과 인테리어 전문 상가들이 있습니다. 종로 5개에는 약재상이 있고요, 동대문 인근에는 의류, 악세사리 관련 상가들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보신각이 있는 종로 거리는 조선시대 육의전의 전통을 이어받은 상업중심지이며, 동대문시장은 도매시장의 전형을 보여주는 곳입니다. 대학로에는 마로니에 공원 일대에 문화의 거리가 조성되어 있고, 세종로의 세종문회회관은 세계적 규모의 공연장입니다. 이처럼 종로는 동마다 각기 다른 매력을 뽐내는 개성 강한 곳입니다.


종로구의 양면성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생깁니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왜 이 종로구를 중심지역으로 정했을까요? 이 질문은 다시 이렇게도 할 수 있습니다. 왜 종로구에 궁궐을 지었을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다시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로 갑니다.

조선은 드라마에서 드러난 것처럼 정도전을 중심으로 한 사대부가 건국한 나라가 맞습니다. 표면적으로 왕이 절대 권력을 지닌 듯 보였지만, 실제 조선을 이끌었던 세력은 사대부였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조선의 수도를 정할 때에도 정도전의 논리와 사대부들이 추진한 방향대로 철저하게 중국식 풍수 이론에 의해서 한양이라는 지역이 선택된 것입니다. 궁궐의 위치를 선정할 때도 중국의 논리를 따랐는데, 그렇게 선정된 곳이 바로 경복궁입니다.

풍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경복궁은 풍수적으로 아주 좋은 위치는 아닙니다. 풍수적으로 좋은 입지는 사신(백호, 청룡, 주작, 현무)이 포근하게 감싸고 잇는 것입니다. 물론 경복궁도 형식적으로는 사신에 해당하는 산에 에워싸고 있는 입지이기는 합니다. 뒤(현무)로는 북악산, 남향을 바라보며 우측(백호)은 인왕산, 좌측은 낙산(청룡)이, 남쪽으로는 남산(주작)이 사신을 형성하고 있기는 하니까요. 하지만 좌청룡인 낙산이 너무 낮고 우백호인 인왕산은 진산인 북악산을 위협할 정도로 강합니다.

풍수적으로 좌측은 남성적인 기운, 우측은 여성적인 기운을 의미합니다. 그 입장에서 보면 좌측이 강해야 정상적인 정치가 이루어지는 것인데, 배치가 상반되어 조선시대 내내 외척(왕비 쪽 세력)이 강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실제 조선시대 내내 왕권이 주도적으로 정치세력을 이끈 적이 거의 없었지요. 그렇다면 아마 정도전이 그것(왕이 완전히 기를 펴지 못하도록)까지 풍수적으로 고려해서 왕궁의 터를 정한 것은 아닐까요?

이 풍수적 입장에서 학교의 성향을 분석해도 재미있는 결과가 나오는데요. 경복궁을 중심에 두고 여성적인 이미지의 연세대는 좌측에, 남성적인 이미지인 고려대는 우측에 있습니다. 이화여대도 연세대 인근에 있고요. 우연치고는 묘하게 일맥상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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