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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이야기*

세번째 서울 이야기 - 은평구

by 짱짱맘s 2020.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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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구의 유래

삼국시대인 백제 때에는 수도를 위례성, 신라시대에는 신주, 통일신라시대에는 한산주로 부르다 757년 경덕왕 7년에 '한주'로 고쳐서 부르게 됩니다. 그리고 서울 지방에는 '한양군'을 설치했는데 서울이라는 이름의 하나인 한양은 여기서 유래한 것입니다.

고려시대에는 '한양군'을 양주라 고치고 1087년 문종 21년에 '양주'를 '남경'으로 승격시켜 '서경(평양)', '동경(경주)'과 더불어 3소경이 되어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습니다.

이후 1308년 충렬왕 34년에 '한양부'로 개칭하였죠.

1394년 조선 태조 3년에 한양부로 도읍을 천도하면서 '한성부'로 이름을 바꿨으며, 서울 지역은 5부 52방으로 개편했는데, 지금의 구에 해당하는 5부(동, 서, 남, 북, 중) 중 은평구 지역은 북부의 성외인 연은방, 상평방 지역에 해당되었으며 '은평'이라는 말은 이 두 지명 (연방+상방)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은평뉴타운


은평구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박원순 서울시장 이야기를 먼저 하겠습니다. 박원순 시장님은 그 동안의 서울시장 중 가장 바쁘게 일하시는 분 같습니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통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시키고, 사업성이 없는 사업은 과감히 접기도 했습니다.

특히 박원순 시장님은 은평뉴타운의 미분양 해결에도 적극적이었습니다. 임시 시장실을 아예 은평뉴타운 내에 설치하고 전철로 구파발역에서 출발하여 서울 본청으로 출퇴근하는 모습을 노출시키면서, 자연스레 언론에 이 지역의 이슈를 부각시키기도 했습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던 그 놁은 분명 배울 점이 있습니다. 물론 그 정책의 성공은 아직 검증되지는 않았습니다만, 정치적인 부분을 배제하고, 경제적 논리로 사업을 검토하고 추진하는 것은 공감이 갑니다. 그 외에도 여러 부동산 정책 중, 뉴타운 사업의 전면 재검토 및 일부 지역의 뉴타운 해제 조치는 파격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은평구는 뉴타운을 빼고는 이야기 전개가 힘듭니다. 수색증산뉴타운과 은평뉴타운의 두 가지 사업이 진행 중이며, 뉴타운으로 인해 한때 가장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반대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 수장의 결정이 그 지역의 미래를 좌우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서두에 현재 뉴타운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박원순 시장님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과연 앞으로 은평구는 어떤 미래를 맞이하게 될지 함께 고민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연혁과 교통 환경

은평구의 정확한 행정 경계선을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응암동이나 증산동은 서대문구, 은평뉴타운이 있는 진관동은 고양시에 속해있다고 오해받기도 합니다. 연신내 박석고개를 넘어서서 은평뉴타운을 보면 왠지 고양시 분위기가 나는데, 실제 고양 삼송지구와 직선거리로 150m밖에 되지 않아 매우 가깝기도 합니다. 1979년에 단독 지자체로 독립하면서 일부는 서대문구에서, 일부는 고양시에서 분리, 포함되었기때문에 어찌 보면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게 당연하기도 하지요.

은평구는 서울 중심과 가까우면서도 중저가 베드타운 역할을 하며 아직 지방 도시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교통의 요지 역할을 하였음에도 현재까지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은평구의 주요 도시는 서울역부터 파주 임진각까지 연결된 통일로입니다. 녹번역이 있는 응암동부터 은평뉴타운의 진관동까지 이어져있는데 이외에는 다른 주요 도로가 없다 보니 출퇴근 시간의 정체가 심합니다.

지하철로는 3호선의 구파발역부터 녹번역, 6호선의 디지털미디어시티역부터 응암~불광~연신내~응암역까지의 순환노선, 경의중앙선의 디지털미디어시티역과 수색역이 은평구에 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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